1화 ㅣ 공존의 어려움을 나누고 싶어

2021. 4. 12. 09:05경계의 연재 서비스/딴지함 (2021.4 ~ )

To. 정화 언니 

 좋은 아침이야 언니! 창문을 열고 공기를 느껴보니, 오늘 날씨는 꽤 쌀쌀할 것 같아. 지난주 내내 어떤 내용으로 첫 편지를 쓸지 머리를 쥐어 싸던 시간이 무색하게 결국 마감 당일날 편지를 쓰게 되었어. 편지는 정말 미리 쓸 수 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누군가의 생일이 닥쳐서야 편지를 몰아 쓰던 습관 때문인가 봐.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어. 그 기억 때문에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가 이불을 차 보기도 하고, 또 버스를 타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혀를 깨물어도 봤어. 내가 무슨 말을 했냐면… 정말 말하기 힘들다. 

 

나는, “내가 진짜 소수자야”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 

 

 와! 정말 글로 쓰고 나니 더 부끄럽다. 당시 상황을 복기해 보자면, 그날은 경계 사람들에게 비건으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말하고 있었어. 아마 메뉴를 고를 때 눈치를 봐야 하는 어려움과 왜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지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해야 할 때 느끼는 피곤함에 대해 말하고 있었을 거야. 그러다 자연스레 페미니즘 이야기도 나왔던 것 같아. ‘여자’이자 ‘비건’으로 사는 삶의 어려움을 토로했지. 그때 경계에서 나 혼자 비건을 지향하고 있었으니, “내가 진짜 소수자”라고 말하면서 나를 좀 더 배려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 

 

 사실 그 말을 하면서도 아차-하며 말이 헛나왔다고 생각했어. 그러고 나서 그 기억에 종종 시달리다가, 얼마 전 시사인에서 다룬 기사를 보고 더 세게 이불을 찼고 더 세게 혀를 깨물 수밖에 없었어. 기사를 읽으며 ‘진짜 소수자’라는 말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말인지, 그 말을 한 나는 얼마나 무지한 사람이었는지 깨닫게 되었거든. 그 이야기를 전할게. 

 

 내가 읽은 기사 제목은 <당신이 떨어뜨린 나의 이야기>로, 동아제약 면접에서 성차별을 당한 피해자를 인터뷰한 내용이었어. 동아제약은 ‘네고왕 2’라는 유튜브 채널에 생리대를 60% 싸게 팔겠다! 하며 여성 친화적 이미지를 쌓아 놓고는, 막상 채용 면접에서 피해자에게 ‘군대 안 가니까 남자보다 월급을 적게 받는 것에 동의하냐’ 고 물었더라. 네고왕을 보지 않아서 이런 일이 화제가 되고 있는지 몰랐는데, 기사를 보자마자 아주 적잖이 충격을 받았어. 2000년대를 들어서면서 이런 말이 성차별적이고 권위적인 발언이라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많이 공유된 상식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중견기업 면접에서 버젓이 ‘성 평등 채용 안내서’ 기준을 위반하고 있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더라. 

 

  물론 나도 재작년에 알바 회식 자리에서  ‘노브라를 하는 연예인은 관종 같다’ 는 사장의 말을 받아치며 나의 노브라가 내 선택의 자유라는 것을 설명해야 했고, ‘여자들은 왜 군대 안 가냐’는 질문에 국방부도 아닌 내가 그 이유를 대답해야 했던 적이 있었어. 병역의 의무가 생긴다면 정말 갈 의향이 있다는 대답에 사장이 코웃음을 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쨌든 알바 회식 자리에서 성차별을 당해 매우 화가 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분은 채용 면접에서 성차별을 당했으니 얼마나 더 화가 나고 절망스러웠을지 공감이 가. 그런데 인터뷰 내용에서 이분은 전혀 ‘피해자스럽지’ 않더라. 많은 언론이 원하는 피해자의 모습. 힘없고, 슬프고, 무기력한 그런 전형적인 모습이 전혀 없었어. 인터뷰지에 담긴 글 너머로 이분의 강단 있는 태도와 카리스마가 전해져서 나도 모르게 압도되기까지 했어. 가장 인상 깊었던 기사 내용을 인용할게. 

 

Q. 네 차례 쓴 글 중에는 ‘차라리 제가 당해서 다행이다’라는 문장이 있다. 무슨 뜻인가?
A. 나는 기득권에 속한다. 금수저는 아니어도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가졌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국내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 유학 경험이 있다. 또 이성애자, 비장애인이다. 제약업계를 벗어났고 취업에 성공했다. 만약 취직이 절박한 여성 구직자나, 가난 등의 이유로 충분히 말하고 쓸 수 있는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이 같은 일을 당했다면, 더 큰 절망을 느꼈을 수 있다. 저마다 사회적 위치가 다른 만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한 발자국 내딛겠다. 

 

 자신이 ‘기득권에 속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이 답변이 오래토록 머릿속에 맴돌았어. 심지어 나는 "내가 진짜 소수자"라는 망언을 했는데, 이분은 자신이 당한 차별을 명백히 알면서도 외려 본인은 기득권에 속하는 소수자라며 자신이 운 좋게 가질 수 있었던 권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어. 소수자로서 겪은 피해 사실을 밝히면서 자신보다 더 약한 사람들을 고려하는 일. 나는 이 여성분이 한 말이 우리 중 ‘진짜 소수자’는 없다는 말처럼 들렸어. 정말로 ‘소수자’와 ‘기득권’의 범주는 유동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말로 말이야. 누구를 만나고 또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소수자는 기득권이 되기도 하고, 기득권은 소수자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 꼭 우리 사회의 차별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처럼 느껴지는 거 있지. 

 

 “진짜 소수자”라고 말했을 당시 나는 소수자가 분명했어. 홀로 비건을 지향하고 있었고 내가 살고 있는 인천은 비건 친화적이지 않아서 채식할 권리를 찾기 몹시 어려웠거든. 또 여성으로 살며 안전의 위협을 받고,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사회적 사건 사고로 죽어 나가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경험이 몸에 짙게 배어있었어. 하지만, 분명 ‘진짜 소수자’는 아니었어.

 

 그날 나는 장애인이 아니라서 온갖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편하게 움직이고 있었어. 그간 나는 가난하지 않아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어. 또 트랜스젠더가 아니라서 신분증을 내밀 때 외양과 성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았어.

 

 앞으로도 나는 비장애인, 시스젠더 등 다양한 이름의 기득권으로 살아갈 확률이 높아. 아마 언니도, 혹은 우리의 편지를 ‘읽을’ 독자들도 소수자이자 기득권으로 살아갈 거라고 생각해. 우리가 소수자와 기득권을 왔다 갔다 하며 어떤 ‘절대적인’ 계층으로도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가 “아무튼, 공존” 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마치 갓 태어난 아기도 시간이 흐르면 결국 노인이 되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우리는 강자가 되었다 약자가 되길 반복하는 순환을 피할 수 없어. 이런 순환에 무지한 채 살다보면 나 처럼 망언을 내뱉는 사람이 여전히 존재할 테고, 동아제약 같은 기업이 부를 차지하겠지? 또 세상에는 더 어렵고 복잡한 키오스크가 무지막지하게 많이 만들어질 거고, 나아가서는 약하다는 이유로 죽는 사람들과 동물들이 늘어날 게 분명하니까 말이야. 그런 일들을 막아내는 것, 자신이 갖고 있는 권리를 하나하나 인정하는 것. 그렇게 사회 속 차별을 줄여내는 것이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최대의 덕 같아. 그런 의미에서, 가해자인 동아제약과 인사팀장에게 그들이 지닌 권력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히 적시하면서도 피해자 신분인 스스로가 특정 지점에서는 기득권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이 여성분의 태도는 정말 지혜로웠다고 생각해. 

 

 물론 공존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아. 지난번 얘기 했던 비둘기들이 결국 창밖에 알을 낳았거든. 솔직히 고민을 많이 했다? 이 알들을 어찌해야 할지 말이야. 알을 깨고 자라나는 데까지는 50일이 걸린다고 하니, 그 사이 여름이 와도 에어컨도 못틀고 비둘기 똥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창도 못 열을 걸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어. 뽀얀 비둘기 알을 바라보며, 정말 공존은 쉽지 않은 일이구나, 절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구나 실감했어. 하지만 내가 가진 권력은 멋대로 알을 치울 수 있는 힘, 둥지를 아무렇지 않게 헤칠 수 있는 힘이겠구나 하고 그 힘을 내려놓기로 했어. 이건 부끄러운 힘이니까 말이야… 그렇게 나는 험난한 공존을 시작해보려 해. 하지만 꼭 끝은 좋을 거야! 여름엔 아기 비둘기가 건강히 태어날 수 있음 좋겠어. 하루에도 몇 번씩 창밖을 넘나 봐. 알을 잘 품고 있는지 말이야. 급히 편지를 마칠게. 답장을 기다리며. 

 

From. 나연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