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ㅣ 맞아, 집에는 사람이 살지

2021. 5. 3. 09:01경계의 연재 서비스/딴지함 (2021.4 ~ )

나연이에게 

  나연아, 안녕! 난 잘 지내. 양양에 다녀왔다는 소식과 함께 그곳을 담은 영상을 보내줘서 고마워. 파도가 움직이는 모습을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정말 좋더라. 네 말마따나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풍경이었어. 실물은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학기가 끝나면 직접 가봐야겠어.

 

 편지 잘 읽었어. 집이 존엄을 잃어버린 현 세태를 다각도에서 이야기해줬더라. 집이 편안함을 주기보다는 차별을 생산하고 더 나아가 인격을 무시하는 일까지 확산되는 모습. 집이 있기 전에 사람이 있는 것인데 순서가 역전되어 버린 우리네 삶. 이런 이야기를 마주하며 마음 한편이 씁쓸했어. ‘양양의 바다’처럼 집도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공간이어야 하는데, 지금은 아무나 그런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러니 사람들 마음이 늘 불편하고 힘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또 우리 세대 청년들이 사방으로 분노하는 이유에, 아무리 노력해도 나를 감싸주는 집 하나 얻기가 어렵기 때문도 있는 것 같아.

 

 내가 어렸을 때 어른들은 열심히 살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나. 나는 그래서 나름으로 학창 시절을 열심히 살았어. 그리고 사회초년생으로도 그럴 의지가 넘쳐났지. 하지만 시골에서 도시로 갓 올라간 학부 1학년 때 방을 알아보며 생각이 변했어. 좁아터진 원룸 월세가 오-육십 만원 하는 걸 목격함과 동시에 ‘열심히 살면 된다’는 내 확신이 단숨에 박살 났거든. 단순히 내가 가진 돈에 비해 집값이 비싸서가 아니야. 비상식적인, 너무나 비상식적인 ‘집값’의 형성 때문에 환상이 무참히 깨진 거야.

 

 그래서 3화의 <집에는 사람이 산다>가 마음에 참 와닿았어. 특히 인간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집이 외려 인간을 질식시키는 현실에서 어떤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한 점이 가장 인상 깊었어. 고도로 자본화된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이야기니까. 그 질문들은 자본, 즉 강자의 논리에서 헤엄치던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것 같았어. 재력가들이 자산 불리는 도구로만 생각했던 집은 동시에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라는 생각을 떠올리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또 잘 산다는 이유로 차별을 정당화하는 그들에게 초등학교 도덕 시간에 배운 오래된 규범을 망각하지 말라고 전하는 것으로 느껴졌어.

 

 그런데 현실엔 참 부족한 부분이 많아. 관련 뉴스만 봐도, 정치 현장과 시민 사회에서 주거와 관련된 ‘제대로 된’ 논의를 이어가지 않는 것 같아서 말이야. 내가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은 유관 책임 부서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지 않는 거야. 가장 근본이 되어줄 주장이 없으니, 국민 설득은 물론이고 이를 바탕으로 할 사회적 논의가 불가능해져. 또 본인들에게 가해지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뒷짐 지고 눈치만 보다 결국 목소리 큰 사람에게 편승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며, 국민을 보호하는 ‘국가’란 진정 이런 건지 회의감이 들기도 했어. 이러한 사태는 앞으로도 우리가 더 편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미래를 기대하기 보다 고민이 더욱더 가득한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 “요즘 청년들은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전에,  '열심히 살면 된다'는 시민들의 희망과 기대를 부숴버린 허술한 정책과 대처에 대해 자기 반성을 해야할 때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이야기해야 해. 침묵하면 집과 재력이 ‘차별과 무시의 마스터키’로 여겨지는 수많은 사례가 더 등장할 테니까. 그 폐단을 끊기 위해 적극적으로 반기를 들어야 할 필요가 있어. 우리는 주눅 들지 않고 투기, 불공정 카르텔, 갑질 공간, 무분별한 재개발 등 강자들에 의해 위대한 질서로 여겨지는 논리에 거부할 수 있는 용기를 잃지 않아야 해.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말이야.

 

“사람이 산다는 사실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집은 하나의 삶이라는 것”

 네 편지를 통해 이 당연한 말들의 중요성을 되뇔 수 있었어.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갔으면 좋겠다.

 

 답장을 마무리하며 너에게 다음 여행지를 추천하려고 해. 바로 내 고향이야. 거기엔 다양한 집들이 많아. 시멘트 집도, 벽돌집도, 개집도, 닭집도 있고 더구나 딸기 ‘하우스’도 있어! 높은 건물이 거의 없어서 시야도 탁 트여 있고, 산도 하늘도 바람도 자연 그대로인 곳이야. 정말로 ‘무의 상태’인 곳인데 너도 좋아할 거야. 놀러 갈 때 연락해. 그때가 봄이면 내가 산딸기를 따줄게. 그럼 안녕.

 

정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