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ㅣ 대화가 필요해 (feat.주식)

2021. 5. 10. 11:21경계의 연재 서비스/딴지함 (2021.4 ~ )

To. 정화 언니

 언니, 지난 한 주는 어떻게 지냈어? 나는 참으로 정신없고 바쁜 한 주를 보냈어. 저번 주 주말에 한 번 밤을 새웠더니 체력이 망가져서 일주일간 잠을 좀 푹 자려고도 노력해 봤어. 그리고 아빠와 운전 연수를 시작했어! 그제, 어제 이틀간 한두 시간씩 운전을 했는데, 나도 모르게 온몸에 긴장을 해서 그런지 해만 지면 아주 노곤노곤해지더라고. 운전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달까… 또 지난 어버이날에는 큰맘 먹고 모아둔 돈을 썼어. 서울에 계신 할머니를 뵙고 돌아오는 길에, 처음으로 여의도에 있는 더현대서울에 들렀거든. 엄마 아빠 신발도 사고, 매장 구경도 했어. 

 

 그런데 정말 그곳은 차원이 다른 부의 공간이더라. 내가 본 곳 중 가장 돈의 냄새가 짙게 나던 세계였어. 추레한 차림으로 방문한 나와 달리 굉장히 정돈되고 세련된 외양을 가지고 있었어. 게다가 매장들은 얼마나 많고, 또 크고, 다양하던지 … 나는 그 모든 것들이 숫자로 환산되어 보였다? 그 숫자들의 위엄에 압도되어 몸이 움츠러들어서, 억지로 어깨를 펴고 목소리에 힘을 주며 당당하게 굴려 했어. 누군간 이런 모습이야말로 너무나도 촌스럽고(?) 쿨하지 못한 짓이라고 하겠지만, 그곳의 가구 하나, 가방 하나가 내 어버이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 많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조금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어. 

 

 몸에 잔뜩 힘을 주고 나오니 단 30분만 구경했을 뿐인데도 기가 빨려서 녹초가 되었어. 그러면서도 이중적인 마음이 드는 거야. ‘여기서 잔뜩 쇼핑을 해보고 싶다’ ‘이 고급진 것들을 다 내 방에 들여놓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 ㅎㅎ 그래서 집에 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봤어. 나는 더현대서울에서 마음 놓고 쇼핑할 수 있는 재력을 가질 수 있을까? 나도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가장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그때 머리에 “주식”이 떠올랐어. 돈이 돈을 벌게 하는 재테크. 기업이 나 대신 내 돈을 불려준다는 투자 방법 말이야. 게다가 요즘 주식이 말 그대로 정말 ‘핫’하잖아. “동학 개미 운동”이라는 말도 생겼고, 유튜브에서는 주식 콘텐츠가 넘쳐나고, 티비 방송에서도 연예인들이 주식 얘기를 해. 또 친구들도 주식을 하고, 친척들도 주식을 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요즘은 너도 나도 주식을 하는 것 같아. 우리 친척 언니가 하는 말이, 요즘은 애기들 돌이나 생일 선물로 주를 사준대. 실제로 기사 몇 개를 찾아보니까 세뱃돈 대신 주를 사줘서 대학 등록금 마련을 일찍부터 시작하는 것이 큰 인기라고 하더라. 재테크에 생경한 나로선 정말 깜짝 놀랄 일이었어. 

 

 나는 주식을 잘 몰라. 시작할 엄두조차 내고 있지 못해. 혹시 언니는 주식을 시작했을까 궁금해. 사실, 나는 초반에 주식이 유행할 때 정말 신기했다? 내 머릿속에 있던 주식은 드라마에 나오던 ‘주주총회’ 가 다였거든. 멋진 양복을 빼입고, 주주들이 대표 퇴임을 막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대표가 문을 박차고 들어오며 식스 센스 급의 반전을 선사한 후 다시 회사를 경영하게 되는… 그런 장면에 나오는 사람들만이 ‘진짜 주주’인 줄 알았어. 그런데 핸드폰에 앱 하나만 깔면 누구나 바로 주식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 또 주주가 될 수 있다는 것에 솔직히 놀랐다. 아빠가 젊었을 때 모아둔 돈을 주식으로 크게 날려본 적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봤는데도 말이야. 나 정말 어느 시대 사람인가 싶지? 

 

 주식은 정말 위험하지만, 또 그만큼 달콤한 일인 것 같아. 초등학생도 몇천만 원을 벌었다더라, 주식으로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다더라 같은 이야기만 들으면 정말 나도 주식을 당장 시작하고 싶어져. 그러나 이런 나의 ‘금융 문맹’ 문제는 뒤로하고, ‘내가 주식을 시작할 수 없는 이유’ 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어. 굉장히 고리타분하게 들릴까, 무식한 소리처럼 들릴까 하고 망설였지만 솔직하게 털어놓아 볼게. 

 

첫 번째, 나는 기업을 믿을 수가 없다? 아니, 기업을 믿어도 될까? 무엇보다, 어느 기업을 믿어야 할까? 

 

 주식은 쉽게 말하자면 내 돈을 투자할 기업을 정해서 그 기업의 자본을 사들이고(매수) 또 파는(매도) 일이지. 이 간단한 논리를 들여다보면 핵심은 한 가지인 것 같아. ‘내 돈이 이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친다.’ 반면, 내가 이 회사의 주가를 일분일초 투명하게 알 수 있는 것처럼, 내 돈이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 또한 투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난 꺼림직해. 현대 사회에서 경영은 단순히 기업이 돈을 버는 방식을 의미하지 않잖아. 준법경영, 윤리경영, 지속 가능 경영, 인권 경영 등 다양한 경영 방식이 제안되고 있는 것을 보면 각 기업에는 사회적 책임, 나아가서는 도의적 책임까지도 있다는 걸 알 수 있어. 특히 국내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로 기업 책임론이 대중 사이에 공유되었다고 생각해. 안전이 검증되지 않은 제품을 19990년대부터 팔아온 기업. 기업의 광고와 이미지를 신뢰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 2000년대에 들어서서 살균제에 있는 유해물질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또 평생의 후유증을 갖게 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분노했지. 이러한 일련의 사례들만 보아도 기업 경영은 소비자 권리와 절대 무관할 수 없어. 기업은 어떤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당연해. 

 

 그런데 요즘 유행하는 주식에서는 이런 기업 책임을 아예 간과하고 있는 것 같아. ‘주식은 무턱대고 사면 안 된다’, ‘기업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은 유명하지만, 막상 그 분석 방법을 알려주는 영상에 들어가 보면 재무제표나 손익계산서를 읽는 방법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고 있어. 내 돈이 이 기업에서 어떻게 쓰일지, 어떤 영향을 미칠지 볼 수 있는 방법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고, 이야기해주지 않아. 주주들이 기업 내 인권이나 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요소를 공시해두지 않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지 않고 주식을 살 때, 가장 쉽게 악덕한 짓을 할 수 있는 건 누굴까? 

 

 주식을 하는 생각을 하면 우선 이런 끔찍한 상상이 먼저 떠올라. 예를 들어, 내가 모은 돈 50만 원을 한 기업에 투자했다 쳐봐. 이미지도 굉장히 좋아 보이고, 성장 가능성도 유망하기로 유명한 기업이야. 근데 그 기업이 사실은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을 하지 않고, 노조 결성을 막고 열악한 환경에서 이들을 근로시키고 있었다면? 만약 그 기업이 개발하고 있는 제품 중에 독극성 물질이 다수 함유되어 있고, 이로 인해 미래에는 사람과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불필요한 동물실험을 하고 학대를 방치하고 있다면?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주식회사 주주는 유한책임을 원칙으로 하므로 출자한 자본액의 한도 내에서만 경제적 책임을 지게 된대. 그럼 내가 낸 50만 원 한도 내에서만 경제적 책임을 진다는 뜻이니, 내가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는 50만 원에 딱 떨어지는 무게일까? 내가 지어야 할 책임의 양을 수학 공식처럼 정확히 계산해낼 수 있을까? 절대 아닐 거야. 분명 기업 경영 측면에서 50만 원은 아주 미미한 돈이겠지. 그러나 그 돈이 아주 조금이라도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데 기여했다면, 그 순간 난 단순 주주가 아닌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 가해자가 되는 것이라 생각해. 

 

둘째, 노력 없이 버는 돈에 익숙해져도 되는 걸까? 

 

 많은 사람이 주식에 끌리는 이유도 우리의 노동환경과 벌이 생활은 너무나도 각박한 데 비해 보수는 항상 적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솔직히 그 고단함에 비해 핸드폰에 앱 하나만 깔면 전 세계 기업의 주를 매수, 매도할 수 있는 최근 주식 투자 방식은 너무나도 편리하잖아. 하지만 이 돈은 말 그대로 ‘불로소득(unearned income)’이 아닐까 싶어. 아닐 불, 수고로울 로, 바 소, 얻을 득. 그러니까 직접 땀 흘려 일하지 않고 번 돈, 운이 좋게 얻은 ‘꽁돈’이 되는 거지. 

 

 

 나도 사실 공짜 돈 엄청 좋아하거든. 그냥 가만히 있는데 돈이 굴러들어오면 좋겠는, 그런 아주 평범한 사람이야. 그런데도 꽁돈을 벌어다 주는 주식투자가 위험하다고 느끼는 건 우리 사회의 양면성 때문이야. 나도 관심이 생겨서 주식을 몇 번 찾아봤는데, 한 분이 이런 당부를 하시더라고. “내가 돈을 번다는 건 누군가 돈을 잃고 있다는 거고, 내가 돈을 잃는다는 건 누군가 돈을 번다는 것이라는 걸 잊지 않고 주식을 하라” 즉, 주식은 제로섬 게임이니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같은 행위는 정말 금하라는 뜻이야. 이런 비슷한 논리로, “내가 주식을 통해 노력 없이 많은 돈을 벌었다면, 누군가는 죽을 만큼 노력해도 많은 벌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기업이 나 대신 수고를 해서 내 돈을 불려주는 건 자본주의 사회의 정말 신기한 재테크 방식이지. 하지만 우리 사회의 모두가 주주가 될 여력이 있는 것은 아니잖아. 분명 누군가는 투자할 돈은커녕 생계비를 마련하느라 매일 고군분투 하고 있을 텐데, 지금 우리 사회는 이 사실을 망각하고 너도나도 꽁돈 만능주의가 되어가는 것 같아 걱정이 돼. 

 

 혹자는 꽁돈 만능주의가 무엇이 나쁘냐고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꽁돈 만능주의는 언젠가 분명 나쁘게 될 거야. 왜냐면 이 만능주의 아래에는 “빈곤의 요인에는 사회적 환경의 잘못보다 개인적 노력 부족과 책임감 부족 탓이 더 크다”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마련이니까. 아무나 주식을 할 수 있는 최근 환경을 보면, “넌 왜 그러지 못했니? 그러니 너가 가난한 건 모두 너(개인)의 탓이야.” 하고 말하는 사회가 되고 있는 것 같아 염려돼. 실제로 국민총소득은 날이 갈수록 높아져 전체 소득은 높아졌어. 그러나 소득분위별 소득 격차도 해를 거듭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는 걸 보고 있자면 우리 사회에는 상대적 빈자가 너무나도 많다는 걸 알 수 있어. 내가 편하게 돈을 벌 때, 지금 누군가는 헤어나올 수 없는 빈곤의 늪에서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라는 걸 생각하면 쉽게 공짜 돈을 바라기가 어려워져. 게다가 이제는 ‘편하게 돈을 버는 것’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땀 흘리는 노동에 대한 혐오와 멸시도 늘어가는 것 같아 걱정이야. 한 작가님의 말씀을 인용하면, 가난이 혐오의 대상이 됨에 따라, 거짓 없이 몸을 놀려 이만큼 내가 벌어 먹고산다는 떳떳함과 자부심마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딴지함을 쓰고 나면 내가 굉장한 위선자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부터 들어. 아마도 딴지를 걸려면 그 사람부터 청렴결백해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겠지? 하지만, 나는 나같이 청렴결백하지 않은 사람들도 여러 딴지를 걸 수 있는 것이 바르다고 생각해. 그래야 우리 사회에 공론장이 다양해질 테니 말이야. 

 

 만약 우리 MZ세대의 주식 트렌드가 단순 유행이 아닌, 자본주의 발달 과정에 따른 당연한 경제적 사회적 흐름이라면, 부디 이 유행이 조금 더 천천히 진행되었으면 좋겠어. 우선, 시민들의 부의 축적에 대한 갈망이 점점 커지는 것에 비해, 가난과 노동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점검해보는 거야. 그리고 재무제표와 손익계산서를 최우선으로 보고 투자 기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얼마나 지는지에 대한 지표를 나타내는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도 중요하게 봐야 한다고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어. 그리고 기업들은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달콤한 유혹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경영이 미치는 영향을 상시 파악하고 투명하게 공개했으면 좋겠어. 그렇게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많은 얘기를 하며 주식이 현명한 재테크 방식으로 자리 잡으면 좋을 거 같아. 그때 즈음이면 나도 죄책감 없이 주식을 시작할 수 있을 거야. 

 

From. 나연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