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ㅣ지디는 '병'이 될 수 없다

2021. 5. 24. 21:02경계의 연재 서비스/딴지함 (2021.4 ~ )

To. 정화언니

 언니 안녕! 하하 😅 멋쩍은 웃음과 함께 편지의 말문을 열어. 마지막까지 지각하다니, 이젠 놀랍지도 않다. 최근에 알게 된 한 이론으로 변명을 해보자면, 완벽주의자일수록 마감 기한을 지키는 것을 어려워한대. 완벽하지 않을까 봐 시작하기를 계속 미루는 거라나 뭐라나 ㅎㅎ..

 

 각설하고, 지난주에 언니가 보낸 편지 정말 잘 읽었어. 우리가 나눈 여섯 통의 편지 중 가장 흥미롭고 의미 있는 편지라고 생각해. 우리의 의견이 가장 뚜렷하게 갈리는 편지였기 때문이야. 언니와 나의 견해 차이를 읽으며, 그간 내가 왜 자본주의를 마냥 나쁘게만 여겨왔는지 깨달을 수 있었어. 지금까지 돈은 사람들을 그저 악덕하게 만드는 불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했어. 그러니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조차도 나쁜 것이라고 느껴온 듯해. 덕분에 잘못된 편견도 버리고, 더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어. 고마워.

 

 내가 서정화 작가의 글을 읽으며 가장 꽂혔던 문장은 이거야. 이젠 부화뇌동이 바보 같은 게 아니라, ‘부화뇌동하지 않는 게 바보가 되어버린 세상인 것 같다.” 이 말은 단순히 주식 문제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말이라고 생각해. 왜 우리는 자신의 뚜렷한 소신을 갖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저 남의 생각과 행동을 따라가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게 되었을까?

 

 그 무엇보다도 한국의 뿌리 깊은 ‘집단주의 문화’ 영향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어. 2020년에 업데이트된 세계 가치관 조사(WVS, World Values Survey) 결과를 찾아보니, 유럽 및 영미권 국가에 비해 한국은 ‘개인의 자기 표현적 가치’ 를 열등하게 여겨.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은 한 개인의 생각이나 취향보다, 집단의 가치를 더 우선시하고 있어. 우리나라처럼 생애 주기에 따라 해야 하는 것들이 명확한 나라를 찾긴 어려울 거야. 가령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을 가야하고,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을 해야 하고, 취업하고 나면 결혼을 해야 한다며 서로를 압박하는 것 말이야.

 

 사실, 옛날에는 이런 집단주의의 문제점을 크게 못 느꼈던 것 같아. 대학 진학을 준비하면서도 굉장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20대 초반을 벗어날수록, ‘내 나이에 이러고 있어도 되나? 취업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가?’ 하는 불안함이 커지는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의 집단 중심주의를 크게 실감하게 되었어. 언니도 크게 공감할 것 같아. 근데 최근 들어서는, 이 집단주의가 더욱 변질되어서 어느새 한국이 전체주의가 암약하기 좋은 나라가 되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혹시 ‘찬혁 지디병’ 영상을 본 적 있어? 악동뮤지션이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해 노래를 부른 영상인데, 무려 295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하면서 크게 화제가 되었어. 가수 찬혁의 모습이 흡사 가수 지디(빅뱅)를 따라 하는 것 같다면서, 누리꾼들이 이 영상에 ‘찬혁 지디병’이라는 이름을 붙였어. 나도 초반에는 마냥 웃으면서 영상과 댓글들을 즐기기만 했는데, 점차 그를 조롱하는 형태로 여론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대중들의 반응이 굉장히 유해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막상 데뷔 초반과 현재의 영상을 비교해보면, 그가 지드래곤을 무작정 따라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 그는 옛날부터 무대를 잘 즐기고, 독특한 노래를 만들어 재밌는 무대를 선보이는 가수였기 때문이야. 과거와 달라진 건, 그가 무대에 더 능숙해졌고 또 그의 개성이 더 뚜렷하게 잘 보인다는 것뿐! 이러한 그의 변화가 ‘병’으로 읽혀서 안 된다고 생각해. 아무리 장난이라고 하더라도, 또 유행이라고 하더라도 말이야. ‘찬혁 지디병’이라는 유행어(?)는 결국 그에게 모종의 치유를 바란다는 거잖아. 눈에 거슬리지 않는 평범함으로 회귀하라는 뜻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노래 깡으로 역주행을 하게 된 가수 비에게 권유된 ‘시무 20조’ 도 비슷한 맥락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이런 유행들은 공통적으로 개인의 개성을 약화하기를 권유해.

 

 현대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통념과 어긋난다고 여겨지는 사상이나 특징은 줄곧 ‘이해할 수 없다’는 해석을 넘어 비난받아 마땅한 병으로 치부되어 왔어. 심화되는 젠더 갈등 속에서 안티 페미니스트는 자신의 혐오 표현을 정당화할 때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란 말을 쓰지. 또 브라를 입지 않고, 정제되지 않는 글과 사진을 SNS에 업로드 한다는 이유로 ‘관심병’이라 낙인찍고 힐난하던 사람들이 있었어. 퀴어를 혐오하는 이들은 트랜스젠더에게 ‘젠신병자’라는 말을 붙이며 그들의 성적 정체성을 쉽게 비난해. 보통 이럴 때 언론과 정치가는 설득과 토론의 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현실 속에서 이들은 단순히 이런 표현을 그대로 답습하며 대중들이 더 갈등하게 만들어. 이러한 현태는 병(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평면적으로 획일화시킬 뿐만 아니라 전체 집단 속에서 다양성을 부여하는 개개인들의 인격 자체를 부정하는 폭력적인 흐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우리는 각각 너무나도 다른 배경을 가지고 태어나 살기 때문에, 인류가 망할 때까지 서로를 쉽게 이해하는 일이란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렇다고 해서, 고통스러운 이해의 시간을 생략하고 맹목적으로 전체의 균형과 질서를 강요하는 일은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살아야 할까? 명확한 답은 내릴 수 없지만, 꼭 여행하듯 살면 되지 않을까 싶어. 여행지에서는 낯선 사람과 낯선 환경, 음식을 보아도 섣불리 비난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적응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처럼.  

 

 사실 오늘의 편지는 나의 개인적인 삶을 질적으로 향상하고 싶은 소망을 담았어. 우리는 평균을 기준으로 살기 때문에, 어마무시한 스트레스를 종종 받잖아. 평균보다 몸무게가 무겁고, 체형이 독특하고, 키가 크다는 이유로 평가받고 또 나의 가치를 규정 받는 것에 대해서도 이젠 정말 신물이 나. 내가 지닌 사상에 대해서도 낯설다는 이유로 검열받고 싶지 않아. 우리가 모두 정말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길 고대해. 서로 다른 얼굴, 몸, 사상, 생각들이 모여 개성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길 바라. 마치 내가 언니의 편지를 읽고 시야를 넓힌 것처럼 말이야. 다른 것들은 그저 다르게 존재할 수 있게, 우리 사회가 더 다양하고 풍요로워질 수 있게 매일 노력하려고 해. 아주 작은 노력부터! 그래서 이번 여름에는,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기에 도전할거야. 부화뇌동하지 않고 스스로 개성과 타인의 딴지 가득한 생각을 지향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낭만주의자의 편지를 마칠게.

 

From. 나연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