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회 ㅣ 연재를 시작하며, 두 여자의 말

2021. 4. 5. 09:24경계의 연재 서비스/딴지함 (2021.4 ~ )

김나연의 말 

 나는 지난 3월부터 이번 봄이 유난히 빨리 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내 방 창문 밖에서 10년째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벚꽃나무 덕분이다. 이 나무에 꽃이 피고 지는 걸 보면 언제 봄이 오고 가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올해에는 3월 말부터 봉우리가 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창문을 가득 채울 만큼 벚꽃이 화사히 만개했다. 창문 쪽으로 흐드러진 나뭇 가지를 안식처 삼아 에어컨 실외기 위에 둥지를 트려는 비둘기를 애써 날려 보내며, 정말 ‘기후 위기’의 시대가 도래했구나 실감한다. 그렇게 조금 낯설고 이른 4월이 시작되었다. 

 4월이 되면 느껴지는 익숙함이 있다. 마음 한 켠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유 모를 죄책감, 찜찜함, 공허함 같은 감정들이다. 언젠가부터 3월 다음은 4월 1일이 아니라, 4월 16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2014년부터 시작된 이 이상한 타임워프가 7년째 반복되고 있다. 내가 느끼는 ‘16일의 상실’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많은 것이 멈추어서 그런지, 이 무채색의 16일이 더 길게 느껴진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나는 봄을 탄다. 이 16일의 시간이 주는 무기력감이 바로 ‘봄을 타는’ 증거다. 

 반면 나와 달리 무기력하지 않은 이들도 많이 보았다. 그들은 열심히 투쟁한다. 그 힘이 어디서 나는지, 너무나도 존경스레 느껴진다. 어떤 사람들은 외려 4월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강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이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7년째 진상규명을 외친다. 어떤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복되는 산업 재해 사고를 규탄하기 위해 단식을 한다. 또 어떤 이는 안전히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지하철을 점거한다. 이들외에도 수년 째, 수십 년째, 봄이고 여름이고 가을이고 겨울이고, 계절을 가리지 않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무기력과 싸우고 있었다. 그들이 느끼는 무기력은 분명 봄 때문만은 아니었다. 

 솔직히 고백한다. 나는 앞서 말한 ‘16일의 상실’이 주는 무기력감이 괴로워 이 딴지함을 시작했다. 상실감을 채우기 위해, 그러니까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마음 깊숙이에 자리 잡기 시작한 죄책감을 지우기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4월이 아니면 딴지함을 시작할 용기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정화언니에게 갑작스레 전화를 걸었다. 이 글을 빌려 정화 언니에게 큰 고마움을 표하고 연재를 시작하고 싶다. 함께 딴지함을 채워주어서, 4월의 무게를 아주 조금은 덜 수 있게 해주어서, 나만 이 계절과 이 사회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어서, 이 고통들을 글로 써 내려갈 수 있게 도와주어서 참 고맙다. 

 첫날부터 지각을 했다. 앞으로의 연재가 참으로 걱정되지만, 일단 열심히 쓰려 한다. 한 명이라도 더 알아야 할 일들을 나누고, 어떤 일들이 가려져 보이지 않는지 알아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살다 보면 세상이 반 발자국이라도 나아지진 않을까. 철없는 희망을 품으며 정화 언니와 편지를 나누려 한다. 이 이상한, 뒤죽박죽의 글을 읽어준 독자와 정화 언니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참, 11일 뒤면 세월호 참사 7주기가 된다. 부디 내년 즈음에는 우리 모두가 치유될 수 있는 4월이 오길 바란다.

 기후 위기로 인해 3월로 앞당겨질지도 모르는 4월의 식목일에, 김나연 씀

 

 

서정화의 말

 나연이와 나의 인연은 버스에서 시작되었다. 새내기 오티를 위해 떠나던 관광버스 안, 우리는 서로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는 어색함을 물씬 풍기는 내게 먼저 인사해 주었는데 그 말과 표정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모른다. 대학에서 나에게 처음 말을 걸어준 사람이었다. 사실 나는 재수 생활로 낯가림이 심해졌고 대학 친구를 사귀지 못 할까 봐 걱정했다. 그래서 오티 전날, 네x버가 알려준 ‘친구 사귀는 법’에 따라 마이쮸를 샀다. 그 마이쮸를 나연이에게 건넸다. 그렇게 그는 나의 첫 번째 대학 친구가 되었다.

 나연이는 해를 거듭할수록 멋있어졌다. 그는 동물에게 따뜻하고, 부당한 것에 소리치며, 약자를 위로한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이런 티를 내면 그는 외려 자신을 채찍질한다. 조금 더 성장해야 한다고. 아직 사유의 지평이 좁다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안쓰러운 한편 그에게 더 반한다. ‘이 정도면 됐지, 열심히 했으니 충분해’라며 자위하던 지난 내 모습을 떠올릴 낯이 없어져서,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잡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가 서간문 연재를 제안했을 때 흔쾌히 응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겁이 났다.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구린 사람인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 문장이 우습다면? 내 생각이 볼품없다면? 조바심이 근육통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 아릿한 느낌은 막 기자가 되기로 다짐한 어린 정화의 기억을 상기시켜주었다. 세상을 바꾸는 멋진 기자가 되겠다는 것,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글을 쓰겠다는 것.  

 변덕스럽게도 나는 다시 마음을 다졌다. 생각을 표현하는 데 겁먹지 않고 비판에도 좌절하지 않겠다는 진부한 결심을 하면서 말이다. 동시에 구린 건 '내'가 아니라, '내가 사유하지 않는 기자가 되는 것'임을 깨달았다. 편지를 쓰며 좋은 기자와 영화감독이 되자는 모호한 목표가 조금이나마 구체화되길 소망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부당한 세상의 훼방꾼이 된다면 이 연재는 비로소 성공하는 것이다. 그날을 고대하며.

 2021년 4월
 서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