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ㅣ인정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자

2021. 4. 19. 08:59경계의 연재 서비스/딴지함 (2021.4 ~ )

나연이에게

 

 나연아 안녕. 난 중간고사 기간이라 눈 밑에 그림자가 점점 커지고 있어. 넌 휴학 중이지? 참 부럽다... 나도 졸업 전엔 꼭 휴학하고 싶어. 여행을 가보고 싶거든. 놀랍겠지만 난 사실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어. 비행하는 건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다. 내가 이 고백을 하면 친구들은 하나 같이 신발 벗고 비행기 타야 한다고 해. 처음엔 진짜 속았다가 요즘엔 그냥 속아주는 척하고 있어 (ㅎㅎ).

 

 참, 편지 잘 받았어. 어렵지만 꼭 생각해봐야 하는 말을 해줘서 고마워. 요즘 생각을 진득하게 하는 걸 멀리했거든. 네 편지 덕분에 글을 여러 번 썼다가 지우면서 깊은 고민을 한 일주일이었어. 

 

 우리 사회에 절대적인 계층은 없고, 소수자와 기득권이 순환하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 정말 흥미롭더라. 지금은 강자일지라도 어떤 상황에선 약자가 될 수 있으니, 우리는 차별을 줄여나가며 ‘아무튼, 공존’해야 한다는 게 네가 하고 싶은 말이구나 느껴졌어.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계층 순환 논리는 역지사지, 곧 ‘공감’과 연결된다고 생각했어. 왜냐하면 약자가 된 적 없는 강자는 ‘자신이 약자가 되었을 때’를 생각하며 약자의 입장을 이해해야 하는 거니까. 그런데 그 ‘공존이라는 자물쇠’를 ‘공감이라는 열쇠’만으로 풀 수 있을지 모르겠는 거야. 내가 아무리 공존을 지향하는 사람이더라도 비둘기알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기득권도 분명 직접 겪어 보기 전까지는 약자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 할 거란 말이야. 다시 말하자면 공감을 실천하는 것이 너무 어려울 것 같은 거야.

 

  다들 공감의 중요성을 외치면서 실제로 공감을 실천하는 사람이 드물어서 그런가 봐. 나조차도 수험 생활 끝나니까 고3 학생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깊이 공감이 안 되고 잘 모르겠더라고. 또 사람들은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해주기보다는 어떤 피해를 겪었는지 증명하라고 하고, 또 ‘나 때는 그랬으니 너도 해야 한다’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기도 하니까.

 

  그래서 나보다 약한 존재, 주류가 아닌 존재, 내가 속하지 않은 존재와의 공존을 역지사지와 공감만으로 실현하기 정말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어. 그러면서 도대체 ‘무엇’이 함께 해야 우리가 진정으로 공존을 실현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해봤어.

 

  고민 끝에 나는, 우리가 순환할 수 있음을 알기 전에 “인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했어! 우리가 같은 ‘사람’이라는 인정 말이야. 장애인과 비장애인도 남성과 여성도 동양인과 서양인도 성 소수자도… 같은 사람, 즉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동시에 ‘나’와 다를 바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느꼈어.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고, 여러 모습을 존중하며, 수많은 생각을 이해하면서 그렇게 우리 사회가 ‘샐러드 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것을 포함하지 않는 건 당연해서 굳이 말하지 않으려 했지만, 혹시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서 언급해둘게.)

 

 난 채소와 토핑과 소스가 조화롭게 섞인 샐러드의 모습이 보기 좋더라. 각자의 빛깔을 드러내고 있잖아.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그것보단 샤부샤부 같아. 채소를 흐물흐물하게 만드는 끓는 물이 세상 곳곳에 많이 흘러넘쳐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나는 언젠가 끓는 물이 채소를 ‘인정’하고 ‘공감’하면서 제 온도를 식힐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그렇게 시원한 물이 되어 채소와 만나 각자의 빛깔을 뽐내며 살아갈 수 있을 거야.

 

  혹자는 나와 너의 말이 유토피아 같다고 말할 거야. 근데 내가 보기에도 그래. 모든 사람이 우리 말과 같다면 세상에 싸움과 대립이 없을 테니까 (ㅎㅎ). 그런데도 이러한 논의들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나는 이렇게 설명하고 싶어. 이상적 사유는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것으로, 그것을 좇으려 노력할 때 우리 사유의 지평이 더 넓어질 것이라고 말이야. 그로써 더 나은 공동체가 건설될 것이라고 말이야!

 

  오랜만에 글 쓰다 보니 손에 땀 나는 거 있지? 내 마음이 너에게 잘 전달될까,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괜스레 긴장이 됐나 봐. 근데 한편으론 정말 기대되고, 내 글이 어떤 반응으로 물들지 궁금하기도 해. 이 복합적인 마음은 뭘까? 설명하기는 힘든데 머리가 환기되고 열심을 다짐하는, 그런 느낌인데… 아, 알겠다. 이거 초심인가 봐. 좋은 글 많이 쓰라고 찾아와 줬나 보다.

 

 혹시 너도 첫 편지 쓰며 느꼈어? 만약 그렇다면 이 마음 기억하며 딴지함을 가득 채우자, 우리. 

 

정화가